“어디 가서 아빠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물으면 ‘아랑드롱’이라고 해.”
“‘아랑드롱’이 뭐에요?”
“‘아랑드롱’이라고 옛날에 아빠 닮은 잘생긴 외국 배우 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아랑드롱’이라는 배우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아버지와 전혀 닮지 않은 이목구비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이후로도 아버지는 자칭 ‘아랑드롱’이라는 말을 자주 하시곤 했다.
아버지는 공업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건축을 가르치시는 교사로 재직 중이시다. 하지만 어릴 적 나의 눈에 자주 보였던 아버지의 모습은 주로 수필이나 서예를 쓰는 모습이었다. 예전에 살던 집에는 비가 오면 천정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양동이를 가져다 놓았던 방 하나가 있었는데 그곳을 서예작품이 가득한 방으로 사용했을 만큼 서예를 즐겨 쓰셨고, 이후에 수필까지 쓰셔서 작가로 등단하시기도 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재직 중이신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 아침 조회시간에 아버지에게 시 낭송을 요청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문득 아버지가 건축이 아니라 국어 선생님이 아닌가 하는 신선한 의혹을 품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정적인 취미뿐만 아니라 동적인 취미도 즐기시는 분이셨다. 젊었을 때 근무가 끝나면 동료 교사분들과 교내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자주 치셨는데 나는 종종 심판대 위 명당자리에서 경기를 관람하기도 하고 ‘볼걸’이 되어 신나게 공을 주우러 다니기도 했다. 자전거에 푹 빠지신 이후부터는 일본에 가서 자전거만으로 투어도 다녀오시고, 주말이면 집 근처의 폐염전을 수십 번 찾아가서 계절별로 멋진 풍경을 사진작품에 담기도 하셨다. 그리고 몇 개월 전 부모님 댁에 갔을 때는 어디선가 중국어를 크게 따라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빠, 요즘 중국어 배우세요?”
“영상을 보다 보니 당나라 시인 이백의 한시를 중국어로 발음하는 게 멋지더구나. 그래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어.”
상대적으로 젊은 내 나이에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자 마음먹는 것이 어려운데 아버지는 영상과 모바일 번역기로 독학을 하셨고, 얼마 되지 않아 한시 몇 개를 중국어로 낭송하시는 모습을 가족들 앞에서 보이셨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아버지의 엄청난 열정을 느꼈고 나이와 열정은 상관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 취미의 변천사에도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혈기가 왕성했던 젊은 시절에는 나와 같이 호기심 많은 청년이셨고, 지금은 허리가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새로운 배움을 마다하지 않는 열정적인 중년이셨다. 불과 얼마 전인 7월에는 그동안 익힌 한문으로 ‘한자능력검정시험 1급’ 시험을 치르고 오셨다. 한자 자격증을 취득하면 어떤 것이 하고 싶으신지 여쭈어보았을 때 아버지는 정년 퇴임 후 어린 친구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동안 시험문제 출제에만 익숙하셨을텐데...... 수험장을 빠져나온 아버지의 시험 후기가 문득 궁금해졌다.
“오늘 시험은 어땠어요, 아빠?”
“쉽지 않네. 두 한자의 부수가 헷갈려서 그건 찍어서 썼어.”
교사로 재직 중이신 아버지의 입에서 시험문제를 찍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아직 시험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합격하셔서 아버지의 꿈이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예전에 아버지의 나이 정도가 되면 더이상 꿈을 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꿈을 꾸기보다는 어릴 적 꾸었던 꿈이 현실화되어 그 현실을 살아갈 뿐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이번 일로 아버지에게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는 사실과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열정은 미남 외국 배우 아랑드롱의 외모만큼이나 빛나고 있었음을......
그런 아버지가 지금도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어디 가서 아빠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물으면 ‘아랑드롱’이라고 해.”
“‘아랑드롱’이 뭐에요?”
“‘아랑드롱’이라고 옛날에 아빠 닮은 잘생긴 외국 배우 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아랑드롱’이라는 배우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아버지와 전혀 닮지 않은 이목구비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이후로도 아버지는 자칭 ‘아랑드롱’이라는 말을 자주 하시곤 했다.
아버지는 공업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건축을 가르치시는 교사로 재직 중이시다. 하지만 어릴 적 나의 눈에 자주 보였던 아버지의 모습은 주로 수필이나 서예를 쓰는 모습이었다. 예전에 살던 집에는 비가 오면 천정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양동이를 가져다 놓았던 방 하나가 있었는데 그곳을 서예작품이 가득한 방으로 사용했을 만큼 서예를 즐겨 쓰셨고, 이후에 수필까지 쓰셔서 작가로 등단하시기도 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재직 중이신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 아침 조회시간에 아버지에게 시 낭송을 요청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문득 아버지가 건축이 아니라 국어 선생님이 아닌가 하는 신선한 의혹을 품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정적인 취미뿐만 아니라 동적인 취미도 즐기시는 분이셨다. 젊었을 때 근무가 끝나면 동료 교사분들과 교내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자주 치셨는데 나는 종종 심판대 위 명당자리에서 경기를 관람하기도 하고 ‘볼걸’이 되어 신나게 공을 주우러 다니기도 했다. 자전거에 푹 빠지신 이후부터는 일본에 가서 자전거만으로 투어도 다녀오시고, 주말이면 집 근처의 폐염전을 수십 번 찾아가서 계절별로 멋진 풍경을 사진작품에 담기도 하셨다. 그리고 몇 개월 전 부모님 댁에 갔을 때는 어디선가 중국어를 크게 따라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빠, 요즘 중국어 배우세요?”
“영상을 보다 보니 당나라 시인 이백의 한시를 중국어로 발음하는 게 멋지더구나. 그래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어.”
상대적으로 젊은 내 나이에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자 마음먹는 것이 어려운데 아버지는 영상과 모바일 번역기로 독학을 하셨고, 얼마 되지 않아 한시 몇 개를 중국어로 낭송하시는 모습을 가족들 앞에서 보이셨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아버지의 엄청난 열정을 느꼈고 나이와 열정은 상관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 취미의 변천사에도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혈기가 왕성했던 젊은 시절에는 나와 같이 호기심 많은 청년이셨고, 지금은 허리가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새로운 배움을 마다하지 않는 열정적인 중년이셨다. 불과 얼마 전인 7월에는 그동안 익힌 한문으로 ‘한자능력검정시험 1급’ 시험을 치르고 오셨다. 한자 자격증을 취득하면 어떤 것이 하고 싶으신지 여쭈어보았을 때 아버지는 정년 퇴임 후 어린 친구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동안 시험문제 출제에만 익숙하셨을텐데...... 수험장을 빠져나온 아버지의 시험 후기가 문득 궁금해졌다.
“오늘 시험은 어땠어요, 아빠?”
“쉽지 않네. 두 한자의 부수가 헷갈려서 그건 찍어서 썼어.”
교사로 재직 중이신 아버지의 입에서 시험문제를 찍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아직 시험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합격하셔서 아버지의 꿈이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예전에 아버지의 나이 정도가 되면 더이상 꿈을 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꿈을 꾸기보다는 어릴 적 꾸었던 꿈이 현실화되어 그 현실을 살아갈 뿐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이번 일로 아버지에게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는 사실과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열정은 미남 외국 배우 아랑드롱의 외모만큼이나 빛나고 있었음을......
그런 아버지가 지금도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