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서초구 아버지센터 '핵심가치 5P'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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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상] 최성필 - 눈 깜짝 고등어구이


당일로 여수 출장이 잡혔습니다. 미팅시간은 오전 10시. 비행기를 탈까? 기차를 탈까? 고민하다가 기차를 타기로 결정했습니다. 새벽 5시 10분 기차를 타야 하는군요. 평소 5시쯤 기상을 하지만 이날은 4시에 기상을 합니다.

미팅은 항상 그렇지만 들어가기 전에 느끼는 극도의 긴장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닌데 살짝 떨려오는 긴장감은 사실 그리 나쁜 느낌은 아닙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인 것 같아 에너지가 채워 집니다.

고객사 미팅을 마치고 협력사 대표님과 점심을 먹으며 두 번째 미팅을 합니다. 뜨거운 곰탕 한 그릇을 후후 불면서도 연신 입에서는 프로젝트 진행 사항들을 꼼꼼히 체크합니다. 밥 먹으며 말이 지나치게 많은 나를 문득 바라보게 되네요. 업체 사장님 식사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장님은 얼굴 보고 만났을 때 최대한의 성과를 내야 하는 제 목표를 이해한다는 듯 그러려니 하며 식사를 계속하십니다. 길쭉한 풋고추를 하나 집어 된장을 푹 찔러 한입 크게 베어 물었는데 청양고추였습니다. 곰탕도 뜨거운데 입속에 불이 타오르는군요. 작은 고추가 매운 거 아녔나요? 분명 길었는데. 인생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게 다 맞는 게 아닙니다. 고추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저는 11살, 10살, 9살, 7살 2남 2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가 많기도 하고 역할을 정확히 분담해서 하는 걸 좋아하는 아내와의 평화전선을 유지 위해 10년 정도 맡겨진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니 어느덧 제 이름앞에 공동육아자라는 부캐가 달려있더라구요. 그 직함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성장 했고(성장한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집안일을 아내와 잘 나누어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가정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원의 가장 중심에 두고 회사일, 나의 취미 등을 그 다음 바깥쪽 원에 두어 왔습니다. 이런 기준이 있었기에 4명을 낳아 부부간에 별 탈 없이 육아라는 전쟁터에 전우애를 쌓아 가며 살아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아이들의 외부 활동이 제한적이고 부모의 역할이 더 많이 요구되는 때를 살아가야 하다보니 힘들 때는 원망스러웠던 아내의 지혜가 새삼 빛나 보입니다.

고등어 두 마리를 노릇노릇하게 구워 식탁에 놓고 함께 차린 저녁을 맛있게 먹습니다. 팔뚝만큼 두툼한 고등어를 금방 구워내었는데 뼈를 발라내는 속도가 아이들 먹는 속도를 못 따라가는군요. 고등어가 살은 어디 갔는지 없고 앙상한 뼈만 남은 고등어를 한번 보고 아이들의 얼굴을 한번 보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하~ 돈 많이 벌어야겠다.’

부의 축척은 언감생심 아이들과 생존을 위한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목이 메이는 저녁입니다.

아이들과 저녁상 정리를 후다닥하고 아내에게 눈짓으로 탈출하자는 신호를 보냅니다. 아내도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는 반응 신호를 보내옵니다. 재활용을 주섬주섬 집어 들고 잠깐의 탈출을 감행합니다. 집 앞 커피숍에 앉아 서로의 긴 하루를 담은 눈을 이제야 여유롭게 바라봅니다. 새벽에 출장을 다녀온 것 뿐인데 며칠은 못 본 것 같아 아내와 하루 동안 각자 있었던 일들을 폭포수처럼 꺼내 서로에게 이야기 해줍니다. 깔깔대며 웃다가, 진지해졌다가, 미소짓다가 저는 아이스커피를 한모금 아내는 따뜻한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잠깐 침묵의 시간도 가집니다.

뜬금없이 아내가 한마디 건넵니다. "여보, 이제 당신 하는 일에 날개를 달아 줄게. 당신과 함께 아이들 키우는 건 이만 하면 됐어. 아이들이 좀 컸으니 혼자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가서 돈 좀 더 벌어오면 안돼?"

항상 일을 더하고 싶어도 가족을 위해, 아내를 위해 일을 더 만들지 않고 집으로 달려왔던 나인데 오늘로써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무의식 중에도 일을 최대한 빨리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게 익숙했던 몸 속 세포들이 순간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게 느껴집니다. "아까 저녁식탁에 생선 사라지는 속도를 보고 돈을 더 벌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잘됐어. 그럼 더 열심히 해볼게."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의 바람이 어제와 다르게 많이 선선해졌습니다. 아내와 팔짱 끼고 나란히 걷는 순간 우리 부부는 각자의 자리를 더 굳건히 하는 그림을 조용히 그려 봅니다. 가장 중요한 인생의 가치는 가정이라는 합의하에 10년을 달려왔는데 이제는 부부가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 더 크게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다음 산 초입에 우뚝 선 기분입니다.

우리 가정의 두 번째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이 순간,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이 두 번째 산바람을 타고 저의 몸을 한바탕 훑어갑니다. 조금 두렵기도 하네요. 이 역시 안가본 길이니까요. 하지만 이 산길을 한걸음 한걸음 잘 꾸려나가봐야 겠지요. 저는 사남매의 아빠이고 아내의 믿음직한 남편이니까요. 저 산속에 또 사계절이 흐르고, 맑은 날도 험준한 길도 맑은 시냇물도 있겠지요. 지금부터 만들어 갈 우리 부부의 인생이 담긴 저 두 번째 산, 인생의 제2막 끝엔 무엇이 있을지 기대됩니다.

제1회 서초구 아버지센터 '핵심가치 5P'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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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상] 최성필 - 눈 깜짝 고등어구이


당일로 여수 출장이 잡혔습니다. 미팅시간은 오전 10시. 비행기를 탈까? 기차를 탈까? 고민하다가 기차를 타기로 결정했습니다. 새벽 5시 10분 기차를 타야 하는군요. 평소 5시쯤 기상을 하지만 이날은 4시에 기상을 합니다.

미팅은 항상 그렇지만 들어가기 전에 느끼는 극도의 긴장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닌데 살짝 떨려오는 긴장감은 사실 그리 나쁜 느낌은 아닙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인 것 같아 에너지가 채워 집니다.

고객사 미팅을 마치고 협력사 대표님과 점심을 먹으며 두 번째 미팅을 합니다. 뜨거운 곰탕 한 그릇을 후후 불면서도 연신 입에서는 프로젝트 진행 사항들을 꼼꼼히 체크합니다. 밥 먹으며 말이 지나치게 많은 나를 문득 바라보게 되네요. 업체 사장님 식사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장님은 얼굴 보고 만났을 때 최대한의 성과를 내야 하는 제 목표를 이해한다는 듯 그러려니 하며 식사를 계속하십니다. 길쭉한 풋고추를 하나 집어 된장을 푹 찔러 한입 크게 베어 물었는데 청양고추였습니다. 곰탕도 뜨거운데 입속에 불이 타오르는군요. 작은 고추가 매운 거 아녔나요? 분명 길었는데. 인생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게 다 맞는 게 아닙니다. 고추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저는 11살, 10살, 9살, 7살 2남 2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가 많기도 하고 역할을 정확히 분담해서 하는 걸 좋아하는 아내와의 평화전선을 유지 위해 10년 정도 맡겨진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니 어느덧 제 이름앞에 공동육아자라는 부캐가 달려있더라구요. 그 직함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성장 했고(성장한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집안일을 아내와 잘 나누어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가정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원의 가장 중심에 두고 회사일, 나의 취미 등을 그 다음 바깥쪽 원에 두어 왔습니다. 이런 기준이 있었기에 4명을 낳아 부부간에 별 탈 없이 육아라는 전쟁터에 전우애를 쌓아 가며 살아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아이들의 외부 활동이 제한적이고 부모의 역할이 더 많이 요구되는 때를 살아가야 하다보니 힘들 때는 원망스러웠던 아내의 지혜가 새삼 빛나 보입니다.

고등어 두 마리를 노릇노릇하게 구워 식탁에 놓고 함께 차린 저녁을 맛있게 먹습니다. 팔뚝만큼 두툼한 고등어를 금방 구워내었는데 뼈를 발라내는 속도가 아이들 먹는 속도를 못 따라가는군요. 고등어가 살은 어디 갔는지 없고 앙상한 뼈만 남은 고등어를 한번 보고 아이들의 얼굴을 한번 보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하~ 돈 많이 벌어야겠다.’

부의 축척은 언감생심 아이들과 생존을 위한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목이 메이는 저녁입니다.

아이들과 저녁상 정리를 후다닥하고 아내에게 눈짓으로 탈출하자는 신호를 보냅니다. 아내도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는 반응 신호를 보내옵니다. 재활용을 주섬주섬 집어 들고 잠깐의 탈출을 감행합니다. 집 앞 커피숍에 앉아 서로의 긴 하루를 담은 눈을 이제야 여유롭게 바라봅니다. 새벽에 출장을 다녀온 것 뿐인데 며칠은 못 본 것 같아 아내와 하루 동안 각자 있었던 일들을 폭포수처럼 꺼내 서로에게 이야기 해줍니다. 깔깔대며 웃다가, 진지해졌다가, 미소짓다가 저는 아이스커피를 한모금 아내는 따뜻한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잠깐 침묵의 시간도 가집니다.

뜬금없이 아내가 한마디 건넵니다. "여보, 이제 당신 하는 일에 날개를 달아 줄게. 당신과 함께 아이들 키우는 건 이만 하면 됐어. 아이들이 좀 컸으니 혼자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가서 돈 좀 더 벌어오면 안돼?"

항상 일을 더하고 싶어도 가족을 위해, 아내를 위해 일을 더 만들지 않고 집으로 달려왔던 나인데 오늘로써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무의식 중에도 일을 최대한 빨리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게 익숙했던 몸 속 세포들이 순간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게 느껴집니다. "아까 저녁식탁에 생선 사라지는 속도를 보고 돈을 더 벌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잘됐어. 그럼 더 열심히 해볼게."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의 바람이 어제와 다르게 많이 선선해졌습니다. 아내와 팔짱 끼고 나란히 걷는 순간 우리 부부는 각자의 자리를 더 굳건히 하는 그림을 조용히 그려 봅니다. 가장 중요한 인생의 가치는 가정이라는 합의하에 10년을 달려왔는데 이제는 부부가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 더 크게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다음 산 초입에 우뚝 선 기분입니다.

우리 가정의 두 번째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이 순간,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이 두 번째 산바람을 타고 저의 몸을 한바탕 훑어갑니다. 조금 두렵기도 하네요. 이 역시 안가본 길이니까요. 하지만 이 산길을 한걸음 한걸음 잘 꾸려나가봐야 겠지요. 저는 사남매의 아빠이고 아내의 믿음직한 남편이니까요. 저 산속에 또 사계절이 흐르고, 맑은 날도 험준한 길도 맑은 시냇물도 있겠지요. 지금부터 만들어 갈 우리 부부의 인생이 담긴 저 두 번째 산, 인생의 제2막 끝엔 무엇이 있을지 기대됩니다.

느낌 한마디 5

  • 넘넘 멋지신 남편,아버지시네요~
    댁네 평안과 앞날을 응원합니다~~????
    제비꽃
    2021-10-18 07:02:37
  • 애국자 이시네요 자녀들이 많이 있으면 인성/사회성도 좋아지고 요 지금은 조금 힘들지만 후에 든든하지 좋아요
    저 또한 3명 자녀들이 성장을 하여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 있기에 30년 늦둥이를 남/녀 가리지 않고 출산을 해야 했는데 쬐금 후회를 한답니다,응원합니다.
    이은영(장미)
    2021-10-14 09:58:45
  • 아버지로서 삶의 애환(?)을 이렇게 해학적으로 풀어내시다니...
    멋진 필력에 감탄했습니다. 그만큼 아내, 그리고 4명의 아이들과
    재미난 삶을 살고 계시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아버지의 위대함에 박수를 쳐드리며,
    늘 화이팅 하시라는 응원의 메시지도 함께 보내드려요.

    상금으로 눈 깜짝 외식도 한 번 하셨으면 좋겠네요! ㅎㅎ
    AgustD
    2021-10-05 14:17:44
  •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최성필 님은 애국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가족도 삼 남매였었고 부모님께서 자녀 양육을 위한 고민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기에,
    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의 2막, 두 번째 산을 잘 넘기시리라 믿으며
    당선 축하드립니다!
    김남준
    2021-10-05 12:24:26
  • 저도 세 아이의 아빠라 백번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글 참 재미있게 잘 쓰시네요. 축하드립니다~~
    강철희
    2021-10-05 12:0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