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서초구 아버지센터 '핵심가치 5P'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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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상] 심지훈 - 공부하는 아이와 독서하는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10여 년이 흘렀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우리 가족에게 크나큰 충격이었지만 이제 내게 아버지는 늘 건강하고 자신만만한 젊은 날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있기도 해서 좋은 점도 있다.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 중에 가슴에 깊이 새긴 내용이 있다. 어느 위인의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나, 요약하면 대충 이런 내용이다. 두 명의 경쟁자가 있었는데 한 명은 집안이 좋은 사람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별볼일 없는 가문 출신이었다. 늘 자신이 훨씬 잘 될 거라고 자만하던 한 명이 다른 이에게 “너는 열심히 해 봤자, 나만큼 될 수가 없다. 나는 집안도 좋고, 너는 비루한 가문 출신 아니냐?”고 하자, 다른 이가 이렇게 받아 친다. “너의 그 화려한 가문은 너에게서 끝나지만, 나의 훌륭한 가문은 나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고 말이다. 아버지가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몇 가지 있는데 늘 이 이야기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가훈이 무엇인지 알아오라는 숙제를 하고자 아버지께 여쭈었더니 그 자리에서 '항상 안주하지 말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기' 라고 마치 그 자리에서 지어낸 것처럼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게 뭐냐? 다른 집은 행복, 건강, 성실 이런 가훈인데 우리 집은 이게 뭐냐?”고 반문했더니 잠시 고민하시다가 그럼 '아버지보다 잘되자'는 어떠냐며 그 말이 그 날 이후로 우리 집 가훈이 된 기억이 있다.

내가 직장생활을 한 지도 어느새 20년이 다 되어간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자회사에 다닐 때 어느 날은 아버지가 중국어 초급 교재를 사 주셨다. 생산기지로서 중국의 매력도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에 직장 생활하는 동안 중국어를 틈틈이 배워 두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 회사를 오래 다니지는 않았지만 실제 내가 있었던 공장의 상당수 팀원들은 중국으로 모두 배치됐다. '계속 그 회사를 다니고, 그 때부터 중국어를 열심히 배웠더라면 지금의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어 있었을까?' 종종 생각이 든다.

은행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에 아버지는 내가 꼭 대학원에 가서 보다 심도 있는 공부를 하기를 원하셨다. 그 때만 해도 금융은 제조업을 지원하는 자금중개의 기능 성격이 강했지만 언젠가는 금융 스스로 이익을 창출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내용이 적힌 미래학 책을 주시면서 말이다. 아버지가 읽었던 어느 책의 내용처럼 실제로 자금중개 기능 이상으로 금융은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해 온 듯하다. 그리고 공부 잘하는 상고 출신 은행원들이 우리의 선배 세대였다면 지금은 다양한 전공의 석박사들이 근무하고 있기도 하다. 적절한 시기에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던 것이 지금 내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주에는 본가에 들러 어머니가 아직도 버리지 못한 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는데 일본어로 쓰인 토플 교재가 나왔다. 어머니 말씀이 아버지는 이왕 공부하는 거라면 일본어와 영어를 동시에 공부 하시겠다고 일본 사람들이 토플을 공부할 때 쓰는 교재로 공부를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난한 학창시절을 보내서 였는지 항상 꿈꾸고 틈나는 대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나도 늘 무언가를 공부하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는 습관이 내게 생겼다. 가끔 초등학생인 둘째로부터 내게 “아버지는 나이도 많은데 왜 공부를 하느냐?”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가장 좋을 때는 자기가 공부할 때 옆에서 같이 책을 보는 내 모습이라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

나의 아버지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집의 가훈인 '아버지보다 잘되자'를 실천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으로 해야 할까? 생각해 보는데, 나는 그 실천 방법으로 독서를 정했다. 내가 어릴 때 마루에 있는 책상에서 공부를 하면 소파에 앉아서 책을 보시던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 조금 버거운 목표일 수도 있겠지만 이틀에 한 권 씩 읽기로 정하고 일 주일에 두 번씩 구립 도서관에 가서 책을 잔뜩 빌린다. 가끔은 아주 얇은 책을 빌려오는 꼼수도 부리기도 하지만, 이틀에 한 권이라면 주52시간 근로 시대에 사는 내가 아버지보다 많은 수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누구나의 취미이기도 한 독서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수필을 좋아하는 편인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그들이 직접 겪었던 값비싼 경험을 소파에 앉아서 편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때로는 어렵고 재미없는 책인 경우에도 인내심을 키워주는 장점마저 있다. 그래서 저녁약속을 가급적 하지 않고 아이들이 공부할 때 그 옆에서 책을 읽는 습관이 어느새 나의 소중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옆에서 책을 읽으셨듯이 이제는 아이가 공부할 때 내가 옆에서 책을 읽고 있다. 세월이 흐른 뒤 아이가 또 그의 아이 옆에서 늘 책을 읽는다면 우리 집은 '아버지보다 잘되는' 집안이 되지 않을까? 또 좋은 책을 서로에게 권하고 읽었던 책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는 교양 있고 수준 높은 가족이 되지 않을까? 오늘 저녁에도 일찍 퇴근해서 공부하는 아이 옆에서 책을 읽는 품격 있는 아버지가 되어야겠다.

제1회 서초구 아버지센터 '핵심가치 5P'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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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상] 심지훈 - 공부하는 아이와 독서하는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10여 년이 흘렀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우리 가족에게 크나큰 충격이었지만 이제 내게 아버지는 늘 건강하고 자신만만한 젊은 날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있기도 해서 좋은 점도 있다.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 중에 가슴에 깊이 새긴 내용이 있다. 어느 위인의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나, 요약하면 대충 이런 내용이다. 두 명의 경쟁자가 있었는데 한 명은 집안이 좋은 사람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별볼일 없는 가문 출신이었다. 늘 자신이 훨씬 잘 될 거라고 자만하던 한 명이 다른 이에게 “너는 열심히 해 봤자, 나만큼 될 수가 없다. 나는 집안도 좋고, 너는 비루한 가문 출신 아니냐?”고 하자, 다른 이가 이렇게 받아 친다. “너의 그 화려한 가문은 너에게서 끝나지만, 나의 훌륭한 가문은 나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고 말이다. 아버지가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몇 가지 있는데 늘 이 이야기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가훈이 무엇인지 알아오라는 숙제를 하고자 아버지께 여쭈었더니 그 자리에서 '항상 안주하지 말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기' 라고 마치 그 자리에서 지어낸 것처럼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게 뭐냐? 다른 집은 행복, 건강, 성실 이런 가훈인데 우리 집은 이게 뭐냐?”고 반문했더니 잠시 고민하시다가 그럼 '아버지보다 잘되자'는 어떠냐며 그 말이 그 날 이후로 우리 집 가훈이 된 기억이 있다.

내가 직장생활을 한 지도 어느새 20년이 다 되어간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자회사에 다닐 때 어느 날은 아버지가 중국어 초급 교재를 사 주셨다. 생산기지로서 중국의 매력도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에 직장 생활하는 동안 중국어를 틈틈이 배워 두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 회사를 오래 다니지는 않았지만 실제 내가 있었던 공장의 상당수 팀원들은 중국으로 모두 배치됐다. '계속 그 회사를 다니고, 그 때부터 중국어를 열심히 배웠더라면 지금의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어 있었을까?' 종종 생각이 든다.

은행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에 아버지는 내가 꼭 대학원에 가서 보다 심도 있는 공부를 하기를 원하셨다. 그 때만 해도 금융은 제조업을 지원하는 자금중개의 기능 성격이 강했지만 언젠가는 금융 스스로 이익을 창출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내용이 적힌 미래학 책을 주시면서 말이다. 아버지가 읽었던 어느 책의 내용처럼 실제로 자금중개 기능 이상으로 금융은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해 온 듯하다. 그리고 공부 잘하는 상고 출신 은행원들이 우리의 선배 세대였다면 지금은 다양한 전공의 석박사들이 근무하고 있기도 하다. 적절한 시기에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던 것이 지금 내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주에는 본가에 들러 어머니가 아직도 버리지 못한 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는데 일본어로 쓰인 토플 교재가 나왔다. 어머니 말씀이 아버지는 이왕 공부하는 거라면 일본어와 영어를 동시에 공부 하시겠다고 일본 사람들이 토플을 공부할 때 쓰는 교재로 공부를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난한 학창시절을 보내서 였는지 항상 꿈꾸고 틈나는 대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나도 늘 무언가를 공부하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는 습관이 내게 생겼다. 가끔 초등학생인 둘째로부터 내게 “아버지는 나이도 많은데 왜 공부를 하느냐?”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가장 좋을 때는 자기가 공부할 때 옆에서 같이 책을 보는 내 모습이라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

나의 아버지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집의 가훈인 '아버지보다 잘되자'를 실천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으로 해야 할까? 생각해 보는데, 나는 그 실천 방법으로 독서를 정했다. 내가 어릴 때 마루에 있는 책상에서 공부를 하면 소파에 앉아서 책을 보시던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 조금 버거운 목표일 수도 있겠지만 이틀에 한 권 씩 읽기로 정하고 일 주일에 두 번씩 구립 도서관에 가서 책을 잔뜩 빌린다. 가끔은 아주 얇은 책을 빌려오는 꼼수도 부리기도 하지만, 이틀에 한 권이라면 주52시간 근로 시대에 사는 내가 아버지보다 많은 수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누구나의 취미이기도 한 독서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수필을 좋아하는 편인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그들이 직접 겪었던 값비싼 경험을 소파에 앉아서 편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때로는 어렵고 재미없는 책인 경우에도 인내심을 키워주는 장점마저 있다. 그래서 저녁약속을 가급적 하지 않고 아이들이 공부할 때 그 옆에서 책을 읽는 습관이 어느새 나의 소중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옆에서 책을 읽으셨듯이 이제는 아이가 공부할 때 내가 옆에서 책을 읽고 있다. 세월이 흐른 뒤 아이가 또 그의 아이 옆에서 늘 책을 읽는다면 우리 집은 '아버지보다 잘되는' 집안이 되지 않을까? 또 좋은 책을 서로에게 권하고 읽었던 책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는 교양 있고 수준 높은 가족이 되지 않을까? 오늘 저녁에도 일찍 퇴근해서 공부하는 아이 옆에서 책을 읽는 품격 있는 아버지가 되어야겠다.

느낌 한마디 9

  • 잔잔한, 그러나 매우 강렬한 어떤 느낌을 주는 글입니다.
    시간의 흐름이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를 절로 이해하게 만들고, 우리가 아버지를 어떻게 닮아가는지를 자연스레 깨우치게 하네요.
    꾸밈없는 글, 아버지를 떠올리게 해 준 글, 고맙습니다.
    성재호
    2021-10-19 04:23:00
  • 참 좋은 그림입니다!
    수상의 영광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누구나 동경은 하면서 실천을 못하는 게 현실인데ᆢ
    참닮아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민주
    2021-10-14 16:24:31
  • 저도 책과 대화하는 할머니 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멋져요????
    샛별김문자
    2021-10-14 14:31:35
  •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들지요 응원합니다
    이은영(장미)
    2021-10-14 10:04:03
  • 수상 축하드립니다. 내용에 담신 메시지들도 정말 좋지만 그 의미를 실천하고 계신 모습이 감동적이고 더 와닿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뛰어 넘는 멋진 아버니! 응원합니다!
    제이
    2021-10-08 11:15:55
  • 가훈인 '아버지보다 잘 되자'가 인상적입니다.
    실천하기 위해서 책을 꾸준히 읽으시는 모습도,
    아버지의 삶을 존경하시고, 또 닮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멋진 생각을 가지고 실천하시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고, 멋진 아버지이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미선
    2021-10-05 14:32:39
  • 백마디 말보단 한 번의 행동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 멋진 아버지이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멋진 아버지 밑에 멋진 아이가 탄생하는 것이겠죠. :)
    SUGA
    2021-10-05 14:23:27
  • 이래라 저래라 하는 충고보다는
    몸소 보여주신 아버지 참 멋지시네요.
    아이가 공부할때 책 읽는 아빠도 참
    대단하십니다. 수상 축하드립니다!
    금보리
    2021-10-05 12:10:23
  •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우리들의 거울 입니다...그모습 말씀을 기억하며 성장하였듯이 우리들의 미래도 지속성장 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변하여 생활습관이나 행동양식은 바뀌어도 내리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과 올리효도의 마음은
    환경변화로 절대 변치않는 사랑뿐입니다
    아버지 아버지?
    자랑스러운 우리아버지?
    목이메인 소리로 불러봅니다........
    노석환
    2021-10-01 17:10:40